엘리야32: 브엘세바로 도망가는 엘리야 | 운영자 | 2020-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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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基礎) 32, 엘리야 32 제목 ; 브엘세바로 도망가는 엘리야
이세벨은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다. 그녀는 엘리야를 죽이려는 분노로 가득하였다. (왕상 19:2) 신들이 내게 벌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왕상 19:2 이세벨이 使者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來日 이맘때에는 丁寧 네 生 命으로 저 사람들 中 한 사람의 生命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神들이 내게 罰위에 罰을 내림 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1) 이것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다. (삼하 3:35)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해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 니라 하매 (삼하 19: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 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 라 하셨다 하라 하여 (왕상 2:23)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왕상 20:10) 벤하닷이 다시 저에게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좇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 라 하매 (왕하 6: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 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2) 그러나 그녀는 당장 군대를 보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엘리야로 하여금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그녀 자신도 두려움 속에 싸여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것을 보고 엘리야가 도망을 간다. 1. 엘리야는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났다. 이 형편은 무엇인가? (1) 이 형편 =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는 위급한 상황이다. (2) 이 형편 = 엘리야 선지자가 자신의 육신 생명을 보존하려는 이기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엘리야가 자기 목숨하나 부지하려는 비겁한 행동은 아니었다. [왕상 19: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2. 엘리야는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했다. (1) [이 생명을 위하여]라 함은 그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2) [도망하여] 그 뜻은 엘리야 자신이 겁을 먹고 약해짐으로 인한 도망 행각은 결코 아니다. 결코 두려움으로 인한 요나의 도망 행위 따위는 아니었다. [욘 1:2-3]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 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분명히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갔다는 말씀이 엘리야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엘리야를 요나와 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 만약에 단순히 엘리야가 도망만 가려고 했다면 그 먼 곳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약 155km인데 납쪽 끝까지 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3. 그렇다면 왜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갔는가? (1) 그를 다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호출하시는 섭리적 역사였다. 그는 아합 왕가를 진멸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하여 새롭게 호렙 산의 길로 호출되는 순간이었다. [왕상 19: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 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길 이야기를 천사가 먼저 하였다. (2) 그에겐 아직 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브엘세바보다 아래 하단쪽에 다메섹이 있다) 그는 다메섹에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할 일이 남아 있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 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되게 할 역사 계승의 사명이 아직 남아 있었다. [왕상 19:15-16]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 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 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끝나지 않은 사람에게 영광이 주어질 수 없다. 갈멜 산의 불은 여호와의 승리를 확증해주는 은총이다. 3년 6개월의 비는 엘리야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가 영광의 승리의 꽃다발을 받도록 역사의 무대위에 올려놓으시지는 않으셨다. 조용히 급하게 사막의 로뎀 나무 아래로 이끌어 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세상의 모르는 축복의 은총을 새롭게 입혀주셨다. (3) 결국 이것은 하나님이 이세벨을 충동시켜 엘리야를 로뎀 나무아래 피신시키는 특별한 사랑이었다. 결코 엘리야의 도망은 자신의 걸음이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섭리적인 호출이었다. 도망가라는 피난의 사랑, 즉 은총이었다. 엘리야가 새롭게 양육을 받는 한 때 두 때 반 때의 특별한 광야였다. [계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적> 우리에게도 갈멜 산 싸움 이후에 바로 영광의 승리의 꽃다발을 받기를 원치 않으신다. 엘리야는 이때 전 백성이 회개하고 이세벨이 돌아올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히 쉽게 영광의 꽃다발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시 로뎀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호렙산에 가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나를 이렇게 먼 곳 브엘세바로 옮기시는 것은 무엇인가 뜻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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