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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초의 자유 선거, 5.10 총선 ③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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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초의 자유 선거, 5.10 총선

 

이 원칙으로 볼 때, 소위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1946113일에 북한에서는 도//군 인민 위원 선거가 치러졌다. 이주영은 이 선거의 추억을 회고한다.

어린 시절 북한에서 마당에서 노는데, 사람들이 와르르 수십 명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통과 흰 통을 들고 왔다. 그날 어머니가 동생을 낳았다. 선거 날 산모가 투표하러 가지 못하자, 투표함을 들고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국회의원 200명을 뽑는다면 당연히 한 지역구에서 여러 후보가 나서서 경쟁한다. 그것이 자유 선거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인민 위원 200명을 뽑는다면 200명 명단을 적고, 다 받아들일 것이냐, 안 받아들일 것이냐를 투표하게 한다.

찬성하면 흰 통에, 반대하면 검은 통에 표를 넣는다. 당시 무서운 상황에서도 기독교인들이 검은 통에 표를 넣었다. 지금은 투표함이 아예 하나이다. 찬성하면 흰 통에다 넣고, 반대하면 가서 따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민주주의라는 범주에 넣고 이야기하면 말이 안 된다.”(이주영 강연, 2011.10.24.)

 

5.10 총 선거의 선진성은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에서도 나타난다. 우리의 첫 번째 선거는 남녀, 재산의 차별 없이 일정 연령 이상의 성인이 모두가 참여하는 보통 선거였다. 지금에야 당연한 사실이지만, 오늘날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는 점에 역사의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영국에서 1754800만의 국민 가운데 투표권을 가진 귀족들은 3.5%에 불과했다.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은 투표권의 확대 과정이었다. 1884년 세금을 내는 모든 남자가 투표권을 획득했다. 1918년에는 세금과 관계없이 모든 남자의 투표권이 보장되었다. 1928년에야 비로소 여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전 국민이 차별 없이 투표권을 갖게 되기까지 무려 170여 년이 걸린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여성의 투표권은 1945년에야 주어졌다. 민주주의의 선두 주자로 알려진 미국에서 흑인들이 실제적으로 투표권을 가진 것은 1965년이었다. 스위스에서는 여성이 1971년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1948년 당시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던 우리나라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선진국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에서도 보통 선거권에 제약이 붙어 있었다

(장하준, 서울: 부키, 2002. p.143).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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